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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영원한 재야' 장기표, 암 투병 끝에 별세 사망, 향년 78세

by niceharu 2024. 9. 22.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78세의 나이로 암 투병 끝에 별세하셨습니다. 장 원장은 22일 새벽, 경기 일산에 위치한 국립암센터에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유족에 따르면, 장 원장은 담낭암을 앓고 있었으며, 암이 이미 4기 상태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한 달 정도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장기표 원장은 1945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셨고, 마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6년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된 것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장 원장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장기표 원장은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에 헌신했던 분이셨습니다.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로 인해 무려 9년간 수감생활을 하셨고, 또 12년 동안은 수배 생활을 하며 쫓기듯 살아야 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위해 온 힘을 다 바쳤던 그의 삶이 참으로 험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는 재야 운동의 한계를 절감하시고, 1989년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며 진보정당 운동에 나서셨습니다. 이후에도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 여러 정당을 창당하며 진보 정치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의 정치 활동은 단지 한 번에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기표 원장은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15대, 16대 총선, 2002년 재보궐 선거, 그리고 17대, 19대, 21대까지 무려 7차례나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회의원에 당선되지는 못하셨습니다.

 

장기표 원장은 정치 활동을 하며 여러 진보 정당을 창당했지만, 끝내 제도권 정치에 입문하지 못한 채 영원한 재야 인사로 불렸습니다. 이 별명은 그가 평생을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라는 제도권에 자리 잡지 못한 그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21대 총선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길을 걸어 미래통합당이라는 보수정당의 후보로 출마했지만, 결과는 여전히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평생을 진보 운동에 헌신했던 인물이 보수정당 후보로 나선 것은 많은 이들에게 큰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이는 그가 항상 변화를 추구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기표 원장의 빈소는 서울대학교 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조문은 오후 2시부터 진행될 예정이며,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 씨와 두 딸이 있다고 합니다.

 

장기표 원장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함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단순히 정치 활동이나 민주화 운동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변화를 위해 끝없이 노력한 한 사람의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족적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것입니다.

 

장기표 원장이 평생을 바쳐온 민주화와 노동운동, 그리고 진보정치에 대한 열정은 참으로 깊었습니다. 수십 년간 재야 운동가로서 활동하며 수감생활과 수배 생활이라는 고난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알았지만, 그가 제도권 정치에 입문하지 못한 이유는 그의 신념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가치와 원칙을 끝까지 고수했으며, 이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가 여러 차례 선거에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선되지 못한 것은 그의 정치적 행보가 어려웠던 이유를 보여줍니다. 그가 속했던 진보 정당들은 대중적으로 큰 지지를 받지 못했으며, 보수정당에 비해 정치적 입지가 약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매번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려 했습니다.

 

특히 그는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치,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치를 지향하며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이러한 정치 철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까지도 그의 정치적 유산은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장기표 원장은 생애 마지막까지도 변화와 혁신을 추구했습니다.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것만 봐도 그는 끝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였고, 그가 남긴 발자취는 한국 현대사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장기표 원장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는 그가 끊임없이 추구했던 가치와 원칙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함과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